
여래십호에 대하여
깨달은 자를 붓다라 일컫는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을 깨닫는단 말인가. 바로 있는 그대로의 진리, 사물과 존재의 실상(實相), 이 세상이 움직이는 이치, 다시 말해서 진여(眞如)라는 말로 표현되는 궁극의 진리를 깨달으면 붓다가 되는 것이다.
진여란 산스크리트 타타타(tathata)로 '그와 같은 것'을 말한다. 그와 같은 것이라? 왜 구체적이면서도 직접적으로 궁극적 진리를 표현하지 않고 '그와 같은 것'이라고 추상적이며 은유적인 수사법을 썼을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하나의 사물도 언어로 엄밀하게 표현하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하물려 궁극의 진리에 대해 언어를 들이대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성적 사유를 뛰어넘는 신비한 영역에 대해서 단지 침묵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언어와 사물간의 일대일 대응관계를 엄밀하게 분석했던 분석철학자 비트겐슈타인도 이렇게 말했다.
'말을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서양철학의 코페르니쿠수적 전환을 이루어 놓았던 칸트 역시 이성의 능력으로는 세계, 영혼, 신 등의 형이상학적 대상을 인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언설을 벗어나 있는 경지를 굳이 언어로 표현한다면 '그와 같다'고 할 뿐 달리 말할 길이 없다. 그래서 진여는 '그렇고 그렇다'고 하여 여여(如如)라고도 부른다.
그 타타타를 온 몸으로 가슴 뭉클하게 깨달은 인격으로 다가온 분이 타타가타(tathagata)이다. 이 타타가타를 한문으로 번역하면 여래(如來) 혹은 여거(如去)가 된다. 즉 타타(tatha)란 '그와 같이', '여실하게'라는 뜻의 부사인데, 여여하게 진여의 세계로 가는 것이 가타(gata)요, 여실에게 그곳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가타(agata)로서, 전자의 경우를 여거라 하고 후자을 일러 여래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와 같은 진리의 세계에 도달했기 때문에 여거요, 그 세계로부터 중생을 구제하러 이 사바 세계에 왔기 때문에 여래인데, 일반적으로 그 중생 구제의 측면을 강조하여 여래라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가고 오는 구조, 그 왕상(往相)과 환상(還相)이 여래라는 말에서도 역동적으로 꿈틀거리고 있는데, 특히 자비의 방향이 강조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여래 십호(如來十號)와 그밖에 여래를 부르는 명칭
석가모니를 비롯하여 모든 여래에게는 열 가지 다른 명칭, 즉 별명이 있다고 하는데, 이를 여래 십호(如來十號)라고 한다. 명칭에는 그에 어울리는 특징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별명을 분석해 보면 여래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능력의 소유자 인지를 알 수 있다. 그 열 가지 이름을 나열해 보면 이렇다.
응공(應供), 정변지(正遍知), 명행족(明行足), 선서(善逝), 세간해(世間解), 무상사(無上士), 조어장부(調御丈夫), 천인사(天人師), 불(佛), 세존(世尊).
응공(應供; Arhat) ; 말 그대로 '마땅히 공양받을 만한 분'이라는 뜻이다. 맑고 향기롭고 아름다운 사람을 보면 저절로 그에게 머리가 숙여지며 공경과 예를 표하게 마련이다. 여래는 세상사의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끊임없는 수행 끝에 모든 번뇌를 끊어버려, 그 번뇌의 티끌마저도 그의 몸에 닿기만 하면 아름다움 향기로 여울진다. 그런 분은 기실 모든 인간뿐만 아니라 하늘을 날고 땅속을 기어다니는 모든 생물, 뭇 생명들로부터 존경받고 공양을 받을 만한 분인 것이다.
정변지(正遍知; Samyak sam buddha); 다른 말로 정등각자(正等覺者)라고 하는 데, 우주와 인생의 모든 이치를 올바로, 그리고 샅샅이 깨쳤다는 뜻에서 불려진 이름이다.
명행족(明行足; Vidyacarana - sampanna); 산스크리트로 비드야(vidya)는 지(知) 또는 명(明)을 의미하고, 차라나(carana)는 행(行)을 뜻하며 삼판나(sampanna)는 구족(具足) 내지는 성취를 일컫는다. 바로 지와 행이 완전한 자를 일컫어 명행족이라 하는 것이다.
사실 지와 행의 일치를 보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지식인들이 사회를 이끌어 가고 비판을 가하기도 하지만, 또 우리들도 덩달아 뭐 좀 안다하면 이것 저것 말들을 많이 하지만 행동은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오히려 우리는 걷과 속이 다른 지식인의 허의 의식을 비판하곤 한다. 뿐만아니라, 나 자신의 이중적인 모습에 스스로 환멸을 느껴 허무와 자학에 빠진곤 한다. 그래서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지행 합일(知行合一)된 인물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여래는 그렇게 말과 행동, 지와 행이 완전하게 일치된 인격자요, 지와 행이 완벽한 인물이다.
선서(善逝; Sugata) ; '잘 갔다'라는 뜻이다. 어디로 잘 갔느냐. 번뇌로 가득찬 이 세계를 뛰어넘어 피안(彼岸)의 저 언덕으로 잘 갔다는 것이다. 혹은 인생 살이를 잘 경영하여 저 세상으로 잘 돌아가신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인생을 잘 사신 분만이 잘 갈 수 있다. 여래는 잘 사신 분이다. 잘 사셨기 때문에 잘 가신다. 그래서 다시는 생사의 고해에 빠지지 않는다.
세간해(世間解; Lokavit); 세(世)는 시간이요 간(間)은 공간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세간이란 시간과 공간이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역사며 사회이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나 일들은 이 시간과 공간이라는 역사와 사회속에서 이루어진다. 여래는 역사와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세간사, 예를 들면 정치. 경제. 윤리. 문화 등의 모든 분야를 꿰뚫음과 아울러 형이상학적인 고도의 철학적 원리를 깨달아 고통받는 사람을 구제해서 그들이 나아갈 방향을 밝힌다는 뜻에서 세간해로 불리는 것이다.
무상사(無上士; Anuttara - purusa);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경지에 다다른 이, 다시 말해서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말한다. 여래는 바로 그러한 분으로 삼계 독존(三界獨尊) 내지는 삼계존(三界尊)이라고도 한다.
조어장부(調御丈夫; Purusadamya sarathin); 조어란 자신의 모든 욕심과 몸의 움직임을 잘 다스리고 제어한다는 뜻이다. 여래는 지혜와 자비를 두루 갖추어 자신을 잘 조어할 뿐더러 여러 중생들을 그들의 기질에 맞추어 잘 제도한다. 석가 여래도 희대의 살인마 알루리마라를 잘 제도하여 귀의시켰다.
천인사(天人師; Sasta - devamanuyanam); 하늘의 신들과 땅의 인간들을 인도하는 위대한 스승을 일컫는 말로 인천(人天)의 대도사(大導師)라 한다.
불(佛); 깨친 이로서 붓다를 말한다.
세존(世尊, Bhagavat)이란 세상의 모든 이치를 깨달아 중생들을 바르게 인도하는 까닭에 '세상의 존경을 받을 만한 분'이라는 뜻에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석가모니도 보리수 아래에서 모든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고 깨달음을 얻고부터 세존(世尊, Bhagavat)이라 일컬어졌다.
여래 십호는 불(佛) 십호로 불리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 위에서 설명한 열 가지 명호 중 불(佛)대신 여래를 꼽는다.
이 밖에도 여래는 행복의 밭을 기르는 밭이라고 하여 복전(福田), 모든 만물에 빛을 내보내 자라나게 한다는 뜻에서 태양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과 위엄을 갖춘 분이라고 해서 백수의 왕 사자(獅子)에 비유하여 여래의 말씀을 사자후(獅子吼)라고도 한다. 또한 여래는 중생의 병을 치유하기 때문에 대의왕(大醫王)이라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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