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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7-27 07:23
진묵대사 모친 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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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원오사
 조회 : 6,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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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묵대사 모친 제문
새만금의 허리쯤에 해당하는 김제시 만경읍 화포리에는 조앙사와 성모암이라는 자그마한 절이 있다. 조앙사는 조선 인조 때의 고승으로, 부처의 소화신(小化身)으로 불렸던 진묵대사(1562~1633)를 기려 창건된 사찰이다.
조앙사의 가장 안쪽, 저만치 만경강이 바라다보이는 곳에 진묵조사전이 있는데, 여기에는 진묵대사의 영정뿐 아니라 그의 모친인 조의씨(調意氏)와 누이의 영정까지 모셔져 있다.
조앙사 옆에 위치한 성모암은 진묵조사의 모친 조의씨를 모시기 위해 1917년에 지어졌다.
진묵대사는 효심이 남달라 출가 후에도 평생 모친을 모시고 효도를 다했다고 한다. 여름날 모기떼의 극성에 고통 받는 노모를 위해, 산신을 불러 모기떼가 나타나지 않게 하라는 명령을 내린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
진묵대사는 모친께 생전에 약속을 했다.. 자신은 출가하였으니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라도 천년동안 향불이 피워지는 곳에 모친의 묘를 모시겠다고...
모친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생전에 약속했던 대로 천하의 명당인 ‘무자손천년향화지지(無子孫千年香火之地)’에 안장했다. 무자손천년향화지지란 자손이 없어도 천년만년 영원한 복락을 누릴 곳이라는 뜻이다.
진묵대사는 출가사문이기 때문에 후손이 이어질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죽어도 돌아가신 어머니를 향한 제사가 이어질 수 있도록 발원한 것이다.
당시 진묵대사가 노모의 왕생극락을 빌며 영전에 바친 49재 제문은 지금까지도 그 애틋한 효성을 짐작케 하는 명문이다.
진묵대사(震默大師) 모친 49재 축문(祝文)
열달동안 태중에서 길러주신 은혜를 어찌 갚사오리까.
슬하에서 3년을 키워주신 은혜를 잊을 수가 없나이다.
만세를 사시고 다시 만세를 더 사신다 해도
자식의 마음은 오히려 만족치 못 할 일이온데,
백년도 채우지 못하시니,
어머니 수명은 어찌 그리도 짧으시옵니까.
표주박 한 개로 노상에서 걸식으로 사는 이 중은 이미 그러 하거니와,
귀밑머리도 풀지 못하고 규중에 있어 시집 못 간 어린 누이는 얼마나 슬프리요.
상단 불공도 마치고 하단제사도 마치고 스님들은 제각기 방으로 돌아갔고,
앞산은 첩첩하고 뒷산도 겹겹이온데 어머니의 혼신은 어디로 갔습니까..
아! 슬프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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